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따르면 청바지 한 벌을 만드는 데 물이 약 7000리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데는 약 2700리터가 필요하다. 청바지와 흰색 면 티셔츠는 각각 한 사람이 9년간, 3년간 마실 물을 집어삼키는 셈이다.
1990년 9월 갤러리아백화점이 패션전문점 파르코를 재개장하며 명품관이라는 호칭을 처음 썼다. 1995년 루이비통의 국내 첫 홍보 담당 매니저 S는 본사에서 보내온 보도자료를 어떻게 번역할지 고민에 빠졌다. ‘luxury brand’라는 영어 표현을 사전적 의미대로 가져온다면 ‘사치품’ 정도의 번역어가 어울리지만, 전략적으로 ‘명품’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이다.
유형은 철저한 정책에 의해 만들어진다. 시즌마다 유행에 이름이 붙는 것도 어딘지 기이하다. 왜 해마다 계절마다 우리에게 반드시 새로운 유행이 필요한 걸까? 유행은 거울에 거울을 비췄을 때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잔상 같다. 삼면이 거울인 엘리베이터에서 내 뒤통수가 하나의 소실점으로 향해 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소비자는 그 유행의 소실점을 향해 끌려 간다.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쯤 봐서 알겠지만, 소실점의 끝은 흐릿하다. 아무리 따라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소비를 줄이기보다 소비 위에 초록색 물감을 덧칠하는 데 열을 올렸다. 휘발유 대신 전기를, 석탄이 아닌 바람과 태양 에너지를 이용하면서 말이다. 물 자체를 아껴 쓰기보다 물을 덜 먹는 식기세척기를 이용하는 데 자족했고, 빨랫감을 햇볕에 건조하기보다 저전력 건조기를 집에 들어면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해왔다. 정부와 기업은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대대적 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공짜 텀블러와 에코백을 마구잡이로 생산해 배포했다. 하나라도 덜 소비하는 대신 하나라도 더 만드는 쪽을 택했다.
제조자가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제품 사용권을 임대하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제품 소유자는 구매자가 아니라 기업이 되는데, 제품 수명이 길어질수록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발상이 실현된다면 고의로 제품 수명을 단축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계획적 진부화’도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