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사소한 징후가 아니었다. 이른바 ‘지구병’은 집착의 대상이 사소해 보인다고 쉽게 해소되는 게 아니다. 분명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여기에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깨달음. 그래서 지구병은 박탈감이고 깊은 상처다. 다른 세상에 대한 향수이기도 한데, 하필 그 세계는 전생처럼 아득하다. 결핍을 느끼는 대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구체적인 욕망 하나하나는 결국 지구에서의 삶 전체를 대표한다. 화성에 오지 않았다면 느끼지 않았을 그리움이니까. 그걸 견디는 것 또한 화성인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는 했다.
아니, 진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비유하자면 그렇다고. 먼저 화성에 온 사람들은 나중에 올 사람들이 편하게 살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는 말이야. 그 임무를 완수하려면 지구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더 많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도 감수해야 했지. 하지만 이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화성 사회를 완성할 수 없었어. 왠지 알겠니? 처음부터 역할이너무 분명하게 정해져 있으니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나도 결국 부품이야. 우주선 조종사는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승객을 실어 날라야 의미가 있어. 승객 없이 날아오는 여객용 우주선은 아무 의미도 없어. 그 비행에서 더 중요한 쪽은 조종사가 아니라 승객이라고. 다음 사람을 위해 뭘 해야 한다는 목적이 정해져 있지 않은 사람 말이야. 목적이 없는 사람은 그냥 살면 돼. 그러라고 우리 같은 세대가 그 고생을 한 거니까.